지구를 살리는 녹색 밥상을 차리다
- 채식요리연구가 이도경
- 이도경 -
채식요리연구가
채식 식당 창업 컨설턴트
‘이도경의 인생학당’, ‘한국채식약선문화원’ 운영
<채식의 즐거움>, <나는 채식 요리사다>,
<다이어트 건강도시락> 등 저술
기후위기와 식량 문제, 가축 전염병 발생으로 세계는 ‘저탄소 밥상’을 외치고 있다. 녹색 사회로의 전환을 비건, 즉 채식이 앞장서고 있는 것. 이도경 채식요리연구가는 25년 전 채식을 시작한 이래로 채식요리를 연구하며 전파해온 ‘국내 1호 비건 셰프’다. 초록빛이 넘실대는 한여름 낮에 비건 쿠킹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한 끼 소박한 채식이 가족과 사회, 지구를 변화시킵니다”
이도경 채식요리연구가
국내 1호 비건 셰프로 잘 알려져 있으세요.
채식의 개념이 생소하던 과거에 어떻게 채식을 시작하셨나요?
종교·철학적인 이유로 1996년도부터 채식을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비건 셰프가 제 직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당시에 ‘채식요리사’라는 직업은 없었거든요.
저는 워낙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청소년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줬고, 대학생 때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본기를 쌓았어요. 나중에는 채식식당에서 조리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다가 채식 관련 강의도 하고 채식식당 창업 컨설팅을 하며 비건 메뉴를 연구했죠.
그렇게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국내 1호 비건 셰프’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네요.(웃음)
채식이란 무엇일까요? 셰프님이 생각하시는 채식의 정의가 궁금해요.
제가 생각하는 채식의 핵심은 ‘비폭력’이에요.
‘다른 생명을 해치지 말자’라는 이치를 사람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로 확장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동물을 음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즉 감정을 가진 정서적 주체로 보는 거죠.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비심과 사랑을 지니고 있어요. 그것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 채식이고요, 요리를 통해 내면의 평화에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요리사와는 달리 ‘비건 셰프’라서 가지는 특별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식재료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든지, 레시피가 달라진다든지 하는 문제들이요.
채식요리는 의외로 간단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요리에서 고기, 생선, 계란, 유제품을 빼면 됩니다.
채소와 과일 위주로 사용하는데, 버섯을 많이 쓰고요. 또 견과류, 종실류(참깨 등), 곡류, 해조류 등 광범위하고 풍부한 재료가 있답니다. 비건은 완전채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채소나 과일은 유전자조작(GMO) 식품인지 아닌지를 꼭 확인합니다.
그리고 제품을 구매할 때 성분표를 꼼꼼히 보는 것이 중요해요. 미세하게 동물성 성분이 들어갈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채식요리를 개발하는 셰프님만의 비법이나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요리는 내면의 지혜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채식요리 전문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요리를 참고했어요. 평소 궁금증이 많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별명이 ‘연구실’이었죠.(웃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요리 사진과 레시피를 보고 ‘어떻게 채식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노트에 기록했어요. 그리고 식당 컨설팅을 할 때는 벤치마킹을 위해 서울에 있는 호텔을 다 가봤습니다. 맛과 플레이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채식 메뉴를 개발했죠. 예를 들면 고기 대신 버섯을 넣은 탕수육을 생각하는 식으로요.
기존 요리를 채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이루는 거군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채식 메뉴도 살짝 소개해주세요.
맛과 식감, 색깔을 살리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비건 스테이크’를 만든다고 생각해봅시다. 표고버섯의 기둥은 매우 쫄깃하죠. 이 버섯들을 물에 불렸다가 전부 갈아서 압력솥에 푹 쪄서 갈아준뒤, 두부와 섞습니다. 그렇게 스테이크의 질감과 모양을 완성해요.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 생각나는 아이스크림도 있어요. 파인애플을 싹 갈아 전분 가루를 섞고요, 완숙 바나나와 식물성 휘핑크림을 가미해서 질감을 만듭니다. ‘비건 아이스크림’ 만들기도 어렵지 않죠?
그러게요. 열심히 연구한 채식요리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 뿌듯함을 느낄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요리가 있었나요?
‘채식 삼계탕’이요. 행사장 코스요리 중에 삼계탕 수프를 선보였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웃음)
‘삼계탕 자체가 닭고기 아니야?’ 하고 의아해할 분들이 있을 거예요. 여기서 비밀은 ‘사람들은 모든 음식을 양념으로 기억한다’는 사실이에요. 먹을 때의 식감, 코로 느껴지는 향신 등을 우리 몸이 학습하는 거죠. 이 비밀을 빨리 캐치해야 해요.
저는 삼계탕 하면 생각나는 인삼, 후추, 마늘, 육수의 맛 등을 채식으로 재현했어요. 실제로 이를 맛본 사람들에게 ‘채식 삼계탕’이라고 말하니 믿기지 않은 듯 놀라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맛이 날 줄 몰랐다고요.
그런 걸 보면 ‘채식’ 하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듯해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까요?
맞아요. 채식한다고 하면 흔히 듣는 질문이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냐’예요. 채식을 하면 키가 안 큰다, 단백질을 섭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잘 짜인 채식 식단을 먹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채식과 육식의 문제가 아닌, 지역적 풍토나 유전적인 면도 크다고 생각해요. 채식을 실천하지만 덩치가 큰 사람이 있고, 육식을 해도 빼빼 마른 사람이 있듯이 말이죠. 이러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채식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채식의 즐거움>이라는 저서가 최근 세상에 나왔죠. ‘몸과 마음을 살리는 소울 푸드’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먹은 음식으로 만들어져요. 만약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야심한 밤에 치킨을 허겁지겁 먹었어요, 다음 날 기분이 어떨까요? 아마 속이 더부룩하면서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음식을 잘못 먹으면 감정의 변화가 오죠.
결국 음식은 나를 만드는 뿌리이자 내 몸, 마음, 나아가 가족과 사회로 연결됩니다. 이 책은 영혼의 음식인 소울 푸드에 관한 이야기이자, 채식 입문서예요.
지금은 셰프님의 음식철학을 강연이나 책을 통해 알리고 계신데, 앞으로의 최종 꿈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채식요리학교 또는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식의(食醫)’를 배출하고 싶어요.
식의는 음식으로 치료하는 사람을 뜻하는데요, 채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채식 약선요리(약이 되는 요리)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건강과 미용 목적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기르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만일 채식 약선요리에 K-푸드의 특징까지 접목한다면 국가 차원에서도 앞으로 지속가능한 직업이 될 겁니다.
채식요리연구가를 꿈꾸는 청소년, 혹은 채식을 시작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친구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채식은 나를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작은 실천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한 끼 채식부터 시작해보세요. 그 소박한 식단이 미래의 우리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뛰놀 수 있는 지구를 만들 거예요.
만약 채식요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셰프가 되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 단련!(웃음) 생각 외로 힘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그리고 음식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필수적이죠.
음식에 메시지를 담아 상대와 소통하고, 요리를 하며 늘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할 수 있어요.
●글 이은주
●사진 손홍주, 이도경 제공
'MODU 직업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ODU 직업인 이야기] 모션그래픽 디자이너 우트크리에이티브 박성우 공동대표 (0) | 2021.08.27 |
---|---|
[MODU 직업인이야기] 비건 제품 인증? 그런게 있었어? - 한국비건인증원 황영희 대표 (0) | 2021.07.22 |
[MODU 직업인이야기] 화장품에 악과 선이 존재한다는 점, 알고 계시나요? (0) | 2021.07.22 |
[MODU 직업인이야기] 크루엘라가 비건패션디자이너라면? (0) | 2021.07.22 |
[MODU 직업인 이야기] 내가 오늘 먹은 감기약은 안전한가?, 의약품 규제과학 센터 이재현 센터장 (0) | 202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