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해치지 않는 선한 화장품을 만듭니다
비건 뷰티 브랜드 기획자
육류 및 어류뿐 아니라 동물의 부산물인 우유와 꿀도 섭취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 단계인 ‘비건’.
비건 뷰티는 이런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화장품 산업에 접목시킨 분야다.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도 하지 않는 원료로 만든 선한 화장품, 비건 뷰티 브랜드 상품 기획자의 직무를 들어보자.
동물 유래 성분을 배제하는 것이 첫걸음
비건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대개 ‘동물권’을 이유로 육식을 반대한다. 이들은 식단뿐만 아니라 동물 가죽이나 털로 만든 의류, 젤라틴이 든 약품, 동물성 원료가 든 화장품 사용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 발표된 그랜드뷰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비건 코스메틱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 6.3%를 보인다. 2025년까지 약 23조 원의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돼 전망이 밝은 산업이다.
비건 뷰티 제품의 경우 동물에서 얻은 원료를 배제하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속가능성과 윤리 소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인 뷰티 제품에 사용하는 화학 성분 중에도 동물 유래 성분이 많다. 예를 들어 동물성 지방에서 추출하는 콜라겐이나 엘라스틴, 벌꿀에서 추출하는 프로폴리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크림류에 들어가는 글리세린의 경우 식물과 동물 모두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성분명만 봐서는 비건 뷰티 제품인지 알기 힘들다. 따라서 일반 소비자들이 비건 제품인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국내외 각종 단체에서 비건 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제품 곳곳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아야
비건 뷰티 제품 기획의 첫 단계는 시장조사다. 소비자 수요, 경쟁사, 파트너사 수요 조사로 제품의 수요를 파악하고 마켓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뷰티 제품의 경우 기후와 인종,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고, 시즌이나 국가마다의 제품 선호도가 달라 타깃 시장과 고객을 좁혀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수요가 높은 제품군이 정해지면, 그 제품이 브랜드 철학에 적합한지 고민하며 논의를 통해 제품 연구개발에 들어간다. 기획한 제품의 특징을 살려 원료를 배합하고, 원료 하나하나의 비건 원료 여부를 검증한 뒤 해당 원료의 안정성, 위험도를 테스트한다.
1차적으로 제품이 완성되면 내·외부, 고객 테스트로 개선점을 찾는다.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에 짧게는 6개월, 길면 2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내용물이 만들어지고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이와 병행해 제품 디자인을 기획한다. 적합한 용기를 선정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살릴 수 있는 포장 디자인을 진행하면서도 패키지 디자인 과정에서 불필요한 포장을 없앨 수는 없는지, 재활용은 쉬운지 등 최대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한다.
“비건이라는 키워드에 몰두하기보다는
직무 역량을 기르는 것이 우선”
비건 코스메틱 브랜드 ‘더비건글로우’ 김효정 대표
2018년 설립한 ‘더비건글로우’의 전 제품은 미국 동물 보호단체인 ‘PETA’에서 비동물테스트 인증과 비건 인증을 받는다. 동물성 원료와 동물실험 등 동물 유래 원료는 모두 덜어내고 엄격하게 성분을 선정한 제품은 물론, 플라스틱 용기를 제거하고 만든 고체형 상품으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동물권에서 나아가 기후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더 나은 대안을 찾는 진심이 보이는 브랜드, 더비건글로우의 김효정 대표를 만났다.
‘비건’이라는 개념도 생소하던 때에 비건 코스메틱 브랜드를 창업했다. 비건 뷰티에 빠지게 된 창업 스토리가 궁금하다.
내 개인적인 자아성취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직무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니, 내가 열정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일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더라.
‘나는 어떻게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고 거기서 열정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당시 코스메틱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화장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이 고통받는지에 대해 점점 눈을 뜨면서, 분명히 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스카라가 안구에 얼마나 자극적인지 테스트하기 위해 토끼의 눈과 점막에 수천 번 바르는 동물 테스트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주변에 비건, 채식주의 친구가 많아 자연히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하고, 채식을 실천하게 된 것도 계기였다. 국내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화장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서 브랜드를 창업하게 됐다.
원료 외에도 여러 면에서 브랜드 철학을 담으려고 하는 듯하다.
제품 수요도가 높은 제품군이 정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 브랜드 철학에 맞지 않으면 생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스크팩이 한창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시기에 비건 마스크팩 론칭을 기획했지만 일회용 쓰레기를 너무 많이 생산하게 된다는 점이 걸려 개발을 중단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일회용 파우치 샘플도 만들지 않는다. 물론 제품을 테스트해보길 원하는 고객이 많고, 제품 구매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일회용 샘플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으나 브랜드 철학에 위배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제품 수요와 브랜드 철학이 충돌하는 때가 기획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트렌드에 매몰된 브랜드가 아닌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비건글로우가 더 빛날 미래가 그려진다. 앞으로의 비전도 궁금하다.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추세인 만큼 더비건글로우도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도록 꾸준히 수출에 힘쓰고 있다. 현재는 미국 및 유럽, 홍콩 등 10개국에 수출 중이다.
글로벌 인지도를 꾸준히 향상시켜 ‘비건 뷰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면 비건 뷰티 브랜드에서 상품을 기획하기 위해 공부해둬야 할 학문도 있을까?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기획 팀장은 행정학을 전공했다. 시장조사와 제품 기획 능력이 필요하기에 경영 전공이 조금 유리하기는 하겠지만, 전공보다는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우선이다. 더비건글로우의 경우 팀원 중 외국인도 있고,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기에 글로벌 역량을 중요시한다. 많은 뷰티 브랜드 전반이 해외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글로벌 역량을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비건 관련 브랜드에서 일하려면 비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직원도 비건이어야 한다든지.
비건에 대한 이해, 동물권과 환경 이슈에 민감한 것은 서류나 면접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역시 기획 능력이다. 비건 뷰티 브랜드 기획자라고 해서 일반 뷰티 브랜드기획자가 가져야 할 자질과 적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뷰티업계와 산업 전반에 대한 관심, 고객 설문과 대면 인터뷰를 통해 데이터를 얻고 검증하는 능력, 데이터 분석과 유의미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분석력, 모아진 자료를 토대로 차별화된 제품을 기획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온라인상 마케팅과 구매가 활발히 이뤄지는 시점에서는 데이터 추출 및 분석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건에 관심을 가지는 청소년이 많이 생기는 추세다. 전반적인 비건산업에 관심이 많다면 어떤 활동을 해보는 게 좋을까?
진로에 있어서 ‘비건’이라는 키워드에 너무 매여 있을 것이 아니라 직무에 관련한 역량을 기르는 것이 좋다. 비건 식품을 제조하는 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싶다면 비건 관련 활동을 하는 것보다 마케터가 되기 위한 역량을 쌓는 것이 먼저듯 말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비건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데에 있어서 채식주의자거나 동물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은 분명히 장점이고 플러스 요소가 되겠지만, 그게 업무 역량과 직무 연관성을 넘어서는 중요도를 갖지는 않으리라 본다.
먼저 국내 비건산업에 포함되는 식품, 의류, 화장품, 반려용품과 육아용품 등 여러 회사를 찾아보고 회사 속 어떤 직무가 내 적성과 흥미에 맞는지 탐색하는 것을 추천한다.
●글 전정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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