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도 왜곡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SNS에서는 ‘돈쭐 내주자’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돈으로 혼쭐을 내주자는 뜻인데, 보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일을 하거나 정의로운 일에 직접 나서는 브랜드, 가게의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그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도와주자는 말이다.
패션 브랜드 ‘라카이코리아’는 요즘 가장 뜨거운 ‘돈쭐’의 대상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태도를 참지 않고 양국을 대상으로 국제소송을 진행하며 남다른 애국 행보를 보이고, 학교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여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기 때문이다. 가장 패셔너블한 방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라카이코리아’ 신정헌 대표를 만나 브랜드 스토리와 그간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라카이코리아’는 다국적 패션 브랜드의
라이선스 계약 기업이다.
라카이코리아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라카이(LAKAI)’는 1999년 미국에서 설립된 신발 회사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신는 ‘보드화’ 쪽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다. 예전에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처럼 라카이 측에서 한국에 공장을 두고 제품을 만들도록 하청을 주고, 물건을 납품하는 형태였다. 나는 2017년 라카이에서 브랜드 라이선스를 취득해 라카이코리아를 론칭했다. 지금은 디자인과 생산 모두 미국 본사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국민 MC’ 유재석, 배우 전효성 등
여러 연예인이 즐겨 신을 만큼
라카이코리아 제품은
디자인 면에서도 뛰어나다.
특히 3.1절 102주년 무궁화 에디션,
8.15 광복열사의 이름을 새기는 등
한국을 상징하는 요소가
디자인에 많이 묻어나는데.
이런 디자인은 민간 기업이기에 할 수 있는 것 같다. 태극기와 독도 등 한국을 형상화한 모티브를 넣는 것이 우리 디자인 아이덴티티다. 신발과 티셔츠, 액세서리, 휴대폰 케이스 등 전 제품에 이를 살리려 한다.
우리 제품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라면, 지금도 하고 있는 이 태극기 배지다. 6.25 전쟁에 참전한 우리나라와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를 기리는 넘버링을 새겼다. 슈트 재킷에도, 캐주얼 셔츠에도 즐겨 착용하고 있다. 스니커즈 중에서는 ‘하티 독도’를 좋아한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키높이 기능이 있어 더욱 마음에 든다.(웃음)
패션 브랜드 CEO가 되려면
개발, 디자인과 생산 등
전 과정을 아우를 능력이 있어야 할 듯하다.
대학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원래 사업 분야는 부동산 개발과 M&A(인수 합병, 하나의 기업이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얻는 것은 ‘인수’로, 둘 이상의 기업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합병’으로 부른다) 쪽이다. 디자인에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전적으로 팀원들의 의견을 듣는다. 대표이다 보니 최종 의사결정권은 나에게 있고, 디자인도 선별하지만 사내 디자이너와 팀원들의 능력을 믿기에 그들의 자율성을 통제하거나 좌지우지하지 않는 편이다.
라카이코리아 직원들은 일반 패션 브랜드 직원보다 연령대가 젊다. 디자이너 역시 20대 초반이 많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할 때도 화려한 경력보다는 자기의 가능성을 믿고, 비전이 확실한 친구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친구들을 주요 역량으로 본다.
‘라카이코리아’ 하면 중국과 일본 네티즌들의
도를 넘은 역사 왜곡을 비판하고,
국제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국가유공자를 위한 후원 사업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패션 기업이 정부보다 민감하게
애국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열렬히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국뽕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아냥대기도 하더라.
이러한 활동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속 시원하게 밝혀달라.
처음부터 양국의 역사 왜곡을 지탄해야겠다는 취지는 아니었다. 많이 조심스러운 이슈가 아닌가. 그저 나도, 직원들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제품에 독도와 태극기 등의 디자인을 녹이기 시작했다. 물론 해외 여론은 좋지 않았다. 심한 악플도 달렸고 수출에도 역풍을 맞았고. 그럼에도 우리는 대한민국 기업이기에, 그리고 한국인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꾸준히 이어가는 것뿐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그 이상의 응원을 해주시기에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국민들의 이어진 후원으로
미국 뉴욕 주에서
역사 왜곡 국제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국제소송을 내게 된 계기,
그리고 진행 과정이 알고 싶다.
지난 2월 말 미국 타임스퀘어에 한복이 우리나라의 전통 옷이라는 것을 세계가 알 수 있도록 광고를 걸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악플과 욕설, 심지어 한국인을 비하하는 사진까지 쏟아졌다. 중국 포털 사이트 ‘바이두’에 기사로 올라왔을 정도다.
회사를 욕하는 것은 우리가 감수할 수 있지만, 한국인을 모두 싸잡아 모욕하고 폄하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회사가 내건 광고가 발단이 됐으니 묵과할 수 없어 국제소송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소송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국제적으로 이슈를 삼아서라도 고칠 수 있기를 바랐다.
초반에는 여러 각도로 변호사들과 상의를 했다. 일본 법원과 중국 법원에 각자 제소하거나 미국 뉴욕 법원에서 한 번에 제소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사실 라이선스와 로열티 문제로 분쟁이 생긴 소송이라면 모를까, 한 나라의 명예를 훼손한 이유로 소송을 건 사례가 없어 고민이 많았다.
일단 지금은 한국에서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분과 법무법인과 함께 미국 현지 로펌과의 계약을 마친 상태다. 올 하반기에는 미국에서 소송 결과도 나올 예정이다. 그 판결문으로 각국의 법원을 찾는다면 쉽사리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5월 말에도
한복과 김치, 비빔밥 등
우리의 것이 우리 것임을 알리는
광고를 또 게재하지 않았나.
타임스퀘어 광고의 단가가
엄청 높다고 들었다.
단기간에 두 번이나
광고를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광고 한 건을 게재하는 데 수천만 원의 금액이 든다. 처음에는 이미지 광고였고, 영상 광고의 경우 그 세 배 정도 금액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많은 국민의 후원으로 내건 만큼 그 저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송 진행 이후 양국의 비난은 좀 사그라졌을까? 올해는 이제까지보다 더 많은 지탄을 받았다. 국제 정세 때문도 있겠지만, 이제껏 똑같은 행보를 해왔음에도 중국과 일본에서 비난이 쇄도했다. 그래서 더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지해주기도 했다. 역사는 소수의 누군가가 왜곡할 수 없는 진실이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있고. 우리의 작다면 작은 목소리에도 커다란 응원과 지지를 받기에 보람이 크다.
지난 5월 5일에는 어린이날
98주년을 맞아 학교폭력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피해 학생 지원에도 손을
내민 걸로 안다.
지금과는 조금 결이 다른 분야인데.
라카이코리아의 주요 소비자는 10대, 20대다. 흔히 ‘요즘 친구’들은 역사에 무관심한 세대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타임스퀘어 광고와 국제소송을 지지하는 소비자 중에서는 10~20대가 아주 많았다. 그 점이 무척 고무적이었고, 또 감사했다. 기업 차원에서 고마운 소비자분들에게 환원할 수 있을 방법을 고민해봤고, 10대가 당면한 문제 중 학교폭력 가해자 처벌은 우리가 도울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의 학교폭력 세태를 보면 가해자 학생들이 정말 악독하다. 그런데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동을 학교에선 쉬쉬하기 바쁘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자의 본분일 텐데도 이런 사건이 교육청은 고사하고 학교폭력위원회에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무마되곤 한다.
우리가 모든 가해자를 계도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피해학생을 도와 행태를 개선하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피해자의 민사, 형사 소송을 돕고, 위원회가 열리면 변호사가 참관해서 2차 가해 없이 피해자의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고자 했다. 가해자의 퇴학과 전학이라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말이다.
10대에 대한 애정과
걱정 어린 시선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신정헌’은
어떤 청소년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도 배포가 컸었나?(웃음)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날 10대 친구들처럼 나라를 지키고자 하고, 역사 의식이 강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냥 반에 흔히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는 그럭저럭 했고, 자율학습 시간이나 학원 수업은 몇 번 빼먹었어도 비교적 모범생이었다.(웃음) 부모님은 과도한 터치도 없으셨고, 내 의사결정을 지지해주는 편이셨다. 나를 통제하지 않고, 내가 한 행동이 부르는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나도 청소년 시절을 겪었고 내 아이도 청소년이 돼가고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어릴 때는 가능한 한 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그 꿈이 꼭 이뤄지지 않더라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있다. 막연한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하는 길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것은 20대가 되고, 30대가 된 본인 스스로의 밑천이 되고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테니까.
10대 때 가졌던 꿈이
지금의 대표님을 만들었다고 봐도 되겠다.
이제 라카이코리아는
어떤 기업보다도 당당하게
‘애국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대중들이 눈여겨볼 만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귀띔해달라.
‘애국’이라는 단어를 다루기 조심스럽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저 마케팅의 수단으로 애국심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대한민국을 위한 행동이 실질적으로 브랜드에 도움이 됨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한 우물을 파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으므로 오해하는 시선도 점점 줄어들리라 본다.
앞으로도 이 기조로 브랜드를 꾸려나가려 한다.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인식도 감사하고, 주요 소비층인 10대와 20대를 위한, 그리고 나라를 위한 활동은 무엇이 있을지 계속해서 발굴하고 고민할 것이다.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꾸준히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기 바란다.
글 전정아 ●사진 손홍주, 라카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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