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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 만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만든 SF 우주영화 <승리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MODU 모두매거진 2021. 8. 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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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X 회사 ‘SPMC’ 정성진 이사

영화 시각효과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은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이다. 

장편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는 CG가 없던 시절, 

종이 공예로 우주선을 제작하는 등의 시도로 지금 보아도 경이로운 장면을 연출해냈다.
스탠리 큐브릭이 학교 공부를 제쳐두고 사진 예술에 빠졌던 것처럼, 

장편영화 <승리호>, <미스터고>와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빈센조>의 VFX 연출을 진두지휘하는 

정성진 이사는 재학 시절 만화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덕후’였다.

 여전히 만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랑하는 분야이기에 즐겁게 일하는 그를 만나 

영화 속 시각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영화를 전공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VFX 산업에 뛰어들게 되셨나요?

A 어릴 적부터 게임과 만화책, 만화영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죠.(웃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고, 대학교 3학년 때 영화 CG회사를 설립했어요. 영화에서 CG를 갓 사용하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자귀모>(1999)라는 영화의 CG를 담당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영화 일을 22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Q 국내 VFX 전문가 천여 명이 참여한 영화 <승리호>의 VFX 작업을 진두지휘하셨는데요.  영화의 VFX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A 우선 VFX가 무엇인지 설명할게요. VFX는 시각효과(Visual Effects)의 약자로, 영화에 들어가는 특수효과를 포괄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컴퓨터가 없을 때는 <스타워즈>처럼 필름을 겹쳐 효과를 내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시각효과를 만들어냈죠. 컴퓨터 그래픽(CG)은 시각효과에 포함되는 개념이고요.
영화의 VFX 작업은 크게 사전작업, 촬영, 후반작업 세 가지로 나뉘어요. 사전작업에서는 영화감독과 콘셉트를 디자인하고, 콘티도 함께 짜는 등 영화를 어떻게 촬영할 것인지 상의합니다. 촬영 중에는 VFX 후반작업을 잘할 수 있도록 촬영지휘를 감독과 함께해요. 촬영이 끝나도 영상을 함께 편집하고요. CG 작업은 감독, 제작자와 함께 마무리하죠. 개봉하는 날까지 감독, 제작자와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 시각효과 감독이에요.

 

Q 배우 유해진 씨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승리호> 기자간담회에서 “(스크린에서)어떻게 나올까 너무 궁금했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배우들은 정말 영화 제작이 끝날 때까지 어떤 모습인지 예측하지 못하나요?

A 배우들은 늘 극장에서 완성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VFX 후반작업이 완성된 모습을 보면 항상 놀랍니다. 미리 이런 모습으로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요. 어쩔 때는 저도 완성된 모습을 모를 때가 있어요.(웃음)

 

Q 유해진 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업동이’ 캐릭터가 인상 깊더라고요. CG 처리된 로봇인데도 배우의 표정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 느껴졌거든요. 특별한 작업 비법이 있나요?

A VFX로는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업동이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 속 기동대원들도 모두 CG입니다. 디지털로 만드는 로봇은 한국 VFX 기술로 충분히 표현 가능해요. 인물과 연동하는 방법은 오랜 직업적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죠. 기술보다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고, 배우의 연기력도 필수입니다.

 

Q 이사님을 만났는데 <승리호>의 작업 비하인드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해요. 한국 최초의 한국인 주연 우주 SF영화를 작업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을 꼽아주세요.

A 나이대가 있는 스태프일수록 한국인이 우주에 있다는 걸 어색하게 받아들였어요. 동양인이 우주에 나가서 한국어로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거죠. 처음이니까. 영화 <스타트랙>에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가 나오는 것도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잖아요. 영화 속에서 송중기 씨가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데 밖에는 우주선이 날아다녀요. 이걸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영화 공개 이후 한동안 악플이 있었는데, 조금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우리는 아직 우주를 배경으로 여러 이야기를 다뤄보지 않았잖아요. <승리호>처럼 한국인이 만든 한국형 SF를 여러 편 만들어야 이야기도 점점 정교해질 것이고, 영상도 더 매끄럽게 다듬어질 겁니다. 사실 <승리호>의 시각효과 감독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들에게 과한 비난을 받게 되면, <승리호>가 내 마지막 SF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웃음)

 

Q <승리호>의 순 제작비는 200억 원 정도로, 넷플릭스 시리즈 파일럿 프로그램 하나의 제작비라고 알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VFX 비용 대비 국내 제작 VFX 비용이 1/7에서 1/10 정도 들었다는 조성희 감독의 인터뷰도 있었는데요. 한국 VFX 아티스트들의 직업적 전망은 어떤가요?

A 시각효과 아티스트들은 소위 말하는 ‘탈한국’을 목표로 삼은 사람들이 많아요. 영화 <반지의 제왕> VFX를 담당했던 뉴질랜드 ‘웨타스튜디오’나 유명 시각효과 제작사들이 즐비한 캐나다 밴쿠버로 해외취업을 하고 싶어 하는 편이죠. 제 밑에서 일하던 100명이 넘는 아티스트를 외국으로 보냈지만, 저는 한국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외국에서 실패하면 정말 막막하거든요. 무턱대고 나갔다가 취직이 안 돼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취직해서 한국보다 2~3배 연봉을 받고 일한다고 해도, 물가나 집세 등의 이유로 경력을 쌓은 뒤 입국하는 아티스트도 많고요.
우리나라는 대부분 정직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근무시간도 잘 지킵니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초과근무도 없어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그 이상 일한다는 게 작업 특성상 무리이기도 하고요. 매일 정해둔 시간 동안 효율을 키우는 방식으로 일하기에 휴가가 줄어든 기분이 들기는 한답니다. 예전에는 한 달 동안 꼬박 일하여 납품한 뒤 한 달을 통으로 쉬거나 함께 해외여행을 가곤 했거든요.
한국 VFX 아티스트들은 확실히 세련됐어요. 일도 잘하고요. 좋은 영상 매체를 자주 접하며 성장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각효과 전문가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고유의 창작 직업이기 때문에, 현재 기술로는 AI로 대체되기 힘든 직업입니다. 직업 전망은 좋다고 할 수 있겠죠. 

 

Q 어떤 관계자는 한국 VFX 산업의 강점 중 하나를 ‘가성비’로 꼽기도 했어요.

A 임금이 낮아서라기보다는, 같은 임금 대비 한국 VFX 아티스트들의 기술이 좋기 때문이에요. 기사에서는 인건비가 할리우드의 1/n이라는 예시를 자주 드는데, 한국 아티스트들의 임금이 절대 낮은 것은 아니에요! 할리우드에 진출한다고 해서 한국 이상의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고요. 농담처럼 말하자면,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가성비’를 따지게 되잖아요. 가성비 좋은 거, 좋죠.(웃음)

 

 

Q 그렇다면 VFX 산업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나 경력이 필요할까요?

A 아직은 VFX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과나 전공이 개설된 대학은 없어요. 영화가 좋아서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림 그리기나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카메라 렌즈 너머 영상의 미학적인 지점을 찾아내는, ‘룩’이 좋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직업이죠. 정시퇴근과 정시출근이 없으니,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나인 투 식스’ 일과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잘 맞습니다. 해외촬영을 어마어마하게 다녀야 하니, 활동적이면 더 좋고요. 다만 VFX 전문가는 VFX 기술을 개발하는 개발자와 VFX 기술로 자연을 화면 속에서 구현하는 아티스트, 둘 사이를 조율하는 관리자로 나뉘기 때문에 꼭 미학적 관점이 뛰어나야 할 필요는 없어요. 개발자는 컴퓨터 공학적 능력이 더 필요하죠. 요즘은 고등학생 도 VFX 산업에 뛰어들더군요.

 

Q ‘영화가 좋아서 뛰어드는 경우’라고 하니, 문득 궁금해져요. 요즘 친구들은 학교와 학원을 반복하는 일과에 입시 준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어려워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찾아낼 수 있을까요?

A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들은, 바쁘게 살아온 인생 탓에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제 아버지도 그러셨고요. 앞서 언급했듯 저는 어릴 적 공부보다는 게임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제 자녀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요. 아내가 공부를 하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게임을 하는 식이죠(웃음). 유명한 영화감독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성공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걸 찾아내려고 안달할필요는 없어요. 여유롭게 마음먹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VFX 회사 ‘SPMC’ 정성진 이사

 

Q 감독님은 여러 영화에 참여하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작업 에피소드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요?

A 기억에 남는 영화는 참 많은데요. 우선 영화 <국가대표>가 기억에 남습니다. 스키점프하는 장면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후반 30분 동안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결말을 향해 계속 달려가는데, 모두 VFX 기술을 사용하여 구현한 것입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영화 <미스터고>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기술력만으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이 남았어요. 그때 개발한 기술들이 다른 영화를 제작할 때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고요. 지금 방영하는 드라마 <빈센조>에 등장하는 모든 이탈리아 촬영 장면은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 찍은 거예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현지 촬영은 불가능했으니까요. 크로마키 그린스크린을 놓고 송중기 씨가 자연스럽게 연기해주었죠.
그 외에도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던 영화 <퀵>이나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도 기억에 남아요. <기생충> 건물을 층별로 나누어 작업한 뒤 결합하는 방식으로 시각효과를 연출했는데, 이런 작업들은 카메라 연출 면에서도 도움이 되었어요.

 

Q 대학생 때 VFX 산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VFX 슈퍼바이저로 주로 일하고 있으시죠. 영화 일을 시작했던 때와 지금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 <승리호> 인터뷰에서는 영화 제작 중 이사님의 매니지먼트 덕에 VFX 팀의 효율이 크게 올랐다고 언급하기도 했어요. 

A 지금은 영화 제작을 하기도 하고, 매니지먼트나 컨설팅도 합니다. 처음에는 VFX 시장을 산업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새로운 IT기술이 영화에 사용되기 시작하니 일단 거부감이 많았죠. 처음과 가장 달라진 것은, 이제 사람들이 VFX가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다는 점과 VFX 시장을 산업으로 인정해주었다는 점이에요. 산업으로 인정되니 국가에서 VFX 회사들을 관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기술적으로 정말 많이 진보했습니다. 직원들의 업무 질도 좋아졌고요. 다만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제 장인어른께서는 아직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세요. 제 장인어른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이제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 그게 가장 큰 차이겠네요.(웃음)
승리호는 10개 정도의 VFX 회사가 모여 협업한 첫 번째 케이스이기도 해요. 저는 스튜디오 ‘비단길’에 고용되어 시각효과 총괄제작을 담당했죠. 지금은 영화 <명량>의 후속작인 <한산> 작업을 마치고 <노량>을 촬영 중입니다. <노량>은 <승리호>처럼 VFX 매니저와 코디, 슈퍼바이저를 개별 고용하여 제작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영화 제작 환경도 이처럼 업무를 세분화하여 협업하는 환경이 늘어날 겁니다. 

 

Q 영화 <미스터고> 촬영 후 인터뷰에서 물이 움직이는 주제의 CG기술이나 털이 움직이는 주제의 CG기술 등 80가지 이상의 독자적 CG기술을 보유했다고 언급하셨어요. 자연을 관찰하고 순간을 포착하여 CG로 표현하는 방식이 전통적인 방식의 예술가들이 자연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왔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학과를 전공한 영향일까요?

A 예술가들이 물감이나 목탄 등 여러 소재를 사용해 질감을 표현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예를 들어 연기가 지나가는 시뮬레이션을 할 때는 천만 개의 점을 화면에 찍은 다음 바람과 중력, 물성 등을 컴퓨터 기술로 입혀요.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함수를 계산해서 넣고 점들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프로그램을 구현하죠. <미스터고>를 연출했을 땐 고릴라가 가진 여러 털의 특성을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어요. 가슴털이나 머리털이 각각 질감이 다르고, 고릴라가 움직이면 털들이 각자 움직여야 하잖아요. 전문용어로 ‘하이어라키(Hierarchy)’라고 하는데, 관계성을 만들어두면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거예요. 자동차를 구현하면 바퀴를 일일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핸들을 꺾으면 바퀴가 따라서 돌도록, 뼈대를 구현하면 손목을 움직였을 때 손가락 관절이 따라오도록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VFX 기술 개발자들에게 ‘컴퓨터만 들여다보지 말고 동물원이나 밖에 나가서 자연을 관찰하라’고 말하기도 해요. VFX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많이 개발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계산하려면 슈퍼컴퓨터가 필요해요. 공학과 아트워크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분업을 할 수밖에 없고, 분업을 하니 사람이 많이 필요해요. 이 인터뷰로 더 많은 학생이 VFX 산업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새로운 산업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해요.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번 도전해보세요.

 

 

 

 

 

글 김나래 ●사진 오계옥, 넷플릭스 ●진행 전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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