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U 직업인 이야기

[MODU 직업인 인터뷰] 소방호스 말고 방화복의 재탄생

MODU 모두매거진 2022. 6. 1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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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방화복을 새 날개로,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다"

                                                                                   119REO 이승우 대표
 
 
화재 현장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맞서 싸우는 소방관에게 방화복은 곧 ‘기억’이다. 어떤 생명을 구하기 위한 과정이 오롯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119REO는 수명이 다한 방화복을 새활용하여 만든 제품을 판매해 그 수익금의 일부를 암 투병 소방관에게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소방관이 우리를 가까운 곁에서 지켜주듯, 우리도 소방관의 생명을 구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소방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 

Q 119REO의 출발점이 궁금해요. 암 또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소방관들의 문제에 특별히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A 암 투병 중인 소방관님과 직접 만난 적이 있어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제의식을 느꼈죠. 현장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직업의 특성상 소방관들은 일반인보다 암 발병률이 높다고 해요. 게다가 암이나 희귀질환을 판정받은 후에도 공무상 상해가 인정되지 않아 수술비를 자비로 해결하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소방관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사회에 널리 알리자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어요. 먼저 떠오른 것은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방화복’이었습니다. 이것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첫 시작이었죠.

 

 

Q 버려진 방화복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겼는지도 알고 싶어요. 일단 방화복을 구하러 다니는 것부터 막막했을 것 같아요.

A 맞아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방화복을 어디서 가져와야 하는지 몰라서 무작정 소방서를 군데군데 찾아다니며 설득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저희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더니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해주시더라고요. ‘Rescue Each Other’의 앞 글자를 따서 119REO라는 회사 이름을 만들었을 만큼 지켜나가고 싶은 우리의 철학이었거든요. 다행히 여러 소방관께서 ‘동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게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주셔서 점점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폐방화복이 멋진 가방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알려주세요.

A 우선 전국 각지의 소방서에서 방화복을 수거하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이고요, 그러고 나서 옷을 세탁하는 데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세탁을 꼼꼼히 하지 않으면 혹시 모를 오염물질이 작업자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다음으로는 깨끗해진 방화복을 분해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방화복에 붙은 주머니, 지퍼 및 기타 부속품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원단의 형태로 펼쳐줍니다. 참고로 수거와 세탁, 분해는 지역 자활센터와 협력하면서 이곳에 있는 근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문 공장에서 원단을 디자인 패턴에 맞춰서 자른 후 봉제하면 119REO의 가방이 완성됩니다.

 

 

Q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치는군요. 작업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방화복을 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수거된 방화복에서 소방관들이 수많은 사람을 구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소방관이 입는 방화복은 튼튼한 소재로 만들어져 아무리 손으로 거칠게 뜯어도 잘 찢기지 않아요. 하지만 불에 그을리고 새까맣게 타버린, 너덜너덜해진 방화복을 보면 ‘얼마나 위험한 현장에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뜯어졌을까’라는 생각에 저절로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방화복을 분해하는 과정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사람의 손길로 방화복을 직접 다루면서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해요. 기계로 많은 부분을 잘라내게 되면 생명을 구한 흔적이 남아 있는 귀중한 방화복의 의미를 잃어버리니까요. 하나하나 소중한 방화복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을 만드는 거죠.

 

 

 

 

생명을 구한 옷, 더 많은 생명을 향해 날다

Q 감각적이면서 간결한 제품 디자인이 인상적이에요. 직선으로 뻗어 있는 ‘형광색 띠’는 소방관의 올곧은 정신을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담은 것들이 또 있나요?

A 119REO 가방 중에는 숫자로 된 이름이 유독 많은데요. 대표적인 것이 ‘REO714’라는 슬링백 제품이에요. 슬링백은 줄을 짧게 조여서 앞으로 메는 가방인데, ‘이것과 비슷하게 생긴 소방관 장비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소방관들이 보통 가슴 쪽에 달고 다니는 구조대상자용 마스크를 보니 마치 슬링백을 멘 모습과 유사해 보이더라고요. 이것을 모티브로 삼아서 디자인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714’라는 숫자도 소방관들이 1분에 내쉬는 호흡수와 연관이 있어요. 이뿐만 아니라 ‘REO893’은 2019년에 소방관이 구한 사람 수인 89만3000명을 의미하고, ‘REO926’은 2019년 기준으로 소방관 한 명이 책임지고 있는 국민들의 숫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Q 지금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방관들에게 매년 수익금을 기부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나요 ? 

A 현재까지 13명의 암 투병 소방관에게 총 8천만 원의 기부금을 전달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저희가 만난 첫 번째 소방관인 故 김범석 소방관님입니다. 사실 이분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에 암 투병 중인 소방관이 전국에 121명이 있었지만, 공무상 상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단 한 건뿐이었어요.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김범석 소방관님이 두 번째 소송에서 승소하고, 2019년에 마침내 공무상 상해를 인정받았을 때 함께 기뻐하고 안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껏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전한 보람이 느껴졌고, 그동안 119REO를 믿고 구매해주신 많은 고객과 함께 이룬 결과라 더욱 뿌듯했어요. 

 

 

Q 대표님이 생각하는 119REO의 최종 목표와 나아갈 길을 알고 싶어요. 

A 최근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방화복을 수거했는지를 돌이켜봤어요. 17톤의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하면서 약 40톤의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해요. 서로가 서로를 구하면서, 환경적 가치도 같이 지킨다는 점에서 영광스러웠습니다. 앞으로는 글로벌 소방 장비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나아가면서 전 세계에서 친환경 가방을 가장 잘 만드는 회사로 성장하고 싶어요. 

 

 

Q 미래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자 하는 ‘창업 꿈나무’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는 조언을 전해주세요. 

A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저 생각하는 것에만 그쳤다면 지금의 119REO는 없었을 거예요. 방화복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소방관의 권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고 실행에 옮겼기에 가능했죠. 저 또한 아직 부족하지만 오늘도 열심히 세상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여러분도 실천의 걸음을 내딛어보는 건 어떨까요?

 

 

 

 

글 이은주 ●사진 바림, 119RE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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