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서기의 디딤돌을 함께 디자인하다 ]
‘소이프’ 고대현 대표
우리나라는 연간 2500명이 ‘열여덟 어른’이 된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지내다 18세가 되면 사회로 쫓겨나듯 시설을 나와야 하는 현실에 처한 이들이다. 사회적 기업 ‘소이프’는 이러한 보육시설 청소년이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게 직업교육을 하고 서로 간의 유대감을 키울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디자인 회사다. 모두에게 자신의 두 발로 온전히 서는 방법을 알려주고픈 소이프의 고대현 대표를 만나보자.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Q 대표님은 봉사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보육시설 청소년을 만나게 됐다고 들었어요. 봉사활동이 ‘소이프’의 창업으로 이어지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A 처음에는 보육시설 아이들과 여행도 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이었어요. 당시에는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친구들이 방학이면 뭘 하는지 아세요? 아무것도 안 해요. 말 그대로 운동장에 앉아만 있는 거예요.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몇 명을 모아 같이 포토 에세이집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아이들과 자주, 오래 만나다 보면 이들이 마주쳐야 할 현실을 깊게 들여다보게 돼요. 진짜 문제는 자립을 해야 할 시기부터더군요. 맨몸으로 나와 집을 구하고 변변한 가구도 없이 시작하는 삶, 사회에 덩그러니 남은 고립감에 삶을 포기하는 친구들 이야기도 듣게 됐어요. 너무 충격이었죠. 이런 봉사활동으로는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방향은 없을까 고민하게 됐고,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분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어요. 마침 제가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지인도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에 이를 살려 아이들에게 실무에 필요한 디자인 기술을 가르치고 그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구상했죠. 그게 소이프의 시작입니다.
Q 자기 힘으로 한 사람 몫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거군요. 교육생으로 선발되면 어떤 걸 배우게 되나요?
A 디자인 아카데미에서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등 디자인에 필요한 툴을 다루는 방법을 공부하고, 이 디자인을 상품화하는 과정을 전부 배웁니다. 아이템 기획부터 디자인 회의, 캐릭터나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은 물론이고, 만들어낸 디자인을 실크 스크린이나 자수 등으로 맨투맨, 양말, 머플러와 같은 패션 아이템에 접목하는 공정에도 함께하죠. 여기에는 전문 디자이너의 손길도 들어가요. 판매 및 홍보에 필요한 사진 촬영, 후작업도 교육생이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Q 실무를 배우고 내 디자인으로 제품도 만들 수 있으니 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지원자가 많겠어요.
A 일단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아이들 위주로 선정하고 있어요. 교육 외에도 나름대로 고민해서 과제물을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다 보니 중도에 그만두는 친구들도 생기지만 이 과정을 밟아가는 자체가 직업훈련이니까요.
교육생 중 몇 명은 사진학과에 진학하기도 하고 고등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일하거나 사회복지사가 되는 등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요. 우리는 모두를 디자이너로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소이프에서 일한 경험으로 적성에 따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죠.
끈끈한 유대감 만들어 시설 밖에서도 외롭지 않도록
Q 지난해부터 ‘보호종료아동’을 ‘자립준비청년’으로 부르게 됐어요. 소이프에서도 직업교육뿐만 아니라 이들의 자립 준비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요?
A 맞아요. 제품 판매 수익의 5%는 교육생의 자립정착금이 될 수 있도록 저축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설을 퇴소한 청년들만 참여할 수 있는 ‘허들링 커뮤니티’도 운영하고요. 사실 시설을 퇴소한 아이들과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사후관리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학교는 잘 다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서로 묻고 챙겨주는 소규모 모임을 만들었고, 이게 발전해서 자립에 필요한 지식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된 거예요.
여기서 자취 요리법이나 돈 관리 비법, 집을 구할 때 주의할 점 등 생활에 밀접한 꿀팁을 나누곤 하는데요, 특히 저렴한 비용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방법이 인기가 많아요. 여러 명이 살던 시설에서 나와서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내 취향대로 꾸미고 싶어지니까요. 하지만 가장 큰 목표는 이 커뮤니티에 참여한 친구들이 유대감을 쌓아서 심리적,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겁니다.
Q 홀로서기는 돕지만 혼자 덩그러니 남는 일이 없도록 서로 보듬는 게 허들링 커뮤니티의 목적이네요. 올해 소이프가 계획 중인 사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데이트 폭력이나 성추행처럼 여성 친구들이 주로 겪는 문제가 있어요. 이를 예방하고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 중이에요. 또 지난 2020년에는 ‘YG엔터테인먼트’의 보이 그룹 ‘위너’ 강승윤 씨가 재능기부를 해주셔서 ‘네이버 해피빈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그때 좋은 인연이 돼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할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아직 확정은 아니니 관심 있게 소식을 기다려주길 바랍니다.(웃음)
누군가는 우리가 하는 일이 그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부기관과 NGO, 우리 같은 기업이 모여 조금씩이나마 그 구멍을 메우다 보면 사각지대에 놓인 친구 모두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또 운영 10년째가 되면 이 회사를 우리 교육생에게 물려줄 계획이에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애정이 깊은 친구를 선발하는 것도 중요하고, 소이프라는 회사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야겠죠.
Q 대표님의 임기가 5년 정도 남은 거네요.(웃음) 내 회사를 차리고 싶은 예비 창업가 친구들에게 사업가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면요?
A 왜 창업을 하고 싶은가요? 목적, 목표가 중요합니다. 만약 사회적 기업을 생각 중이라면 이윤을 내는 것을 넘어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둬야 해요. 해내야 하는 목표가 확실하면 힘든 시기에도 팀원과 똘똘 뭉쳐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사업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업적 멘토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요. 우리도 초반에는 무자본으로 시작했어요. 대신 노동력이 있었죠. 초반에는 월급을 가져가지도 못했고 수익이 나더라도 사업에 재투자하곤 했어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정부 지원 사업을 추천해요. 물론 지원 사업을 맡으면 그만한 책임감이 필요하답니다.
Q 꼭 보육시설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외롭고 힘든 청소년이 참 많을 거예요. 이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남겨주세요.
A 저도 학생 때 무척 방황을 했어요. 같이 놀던 친구들 대부분이 자퇴를 해서 저도 고등학교를 자퇴할까 고민도 했죠. 그때 어머니가 “공부가 싫으면 다른 걸 해보라”고 말씀하셨고, 호기심으로 복장학원에 가서 패션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옷의 패턴을 그리고 패션 일러스트를 그리는 게 진짜 재밌는 거예요. 이걸 대학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지니 입시미술도 공부해야 했고요. 막연히 꿈이 생기기 시작하니 방황할 시간이 없었어요.(웃음)
어머니가 절 믿어주셨던 게 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여러분도 누군가를 믿어주세요. 그리고 그 믿음을 받고 있다면 기회로 만들고요. 기회는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오지 않습니다. 내 노력도 필요하죠.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나를 보는 시선도 바뀜을 믿으세요.
글 전정아 ●사진 손홍주, 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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