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U 직업인 이야기

[MODU 직업인 이야기 ] 한약, 이걸로 이렇게 만든다.

MODU 모두매거진 2021. 11. 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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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밝히다
만약 ‘복분자’의 생김새를 상상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보통 ‘산딸기’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복분자와 산딸기가 같은 ‘종(種)’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복분자는 ‘복분자딸기’라는 식물의 열매로 일반 산딸기와는 종과 성분이 다르다. 인류의 지역적·신체적 특성에 따라 ‘인종’을 분류해놓은 것처럼, 한약재에도 대체로 종이 세분화되어 있다. 인삼은 전 세계에서 20종이 넘고, 당귀라는 식물은 나라마다 종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초학 전문가는 이러한 한약의 원료가 되는 본초의 종을 따지고, 기원을 밝혀내는 일을 한다. 쉽게 말하면 특정 한약에 어떤 종을 쓰는지, 효능이 좋은 본초를 제대로 썼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먼저 본초학 전문가는 ‘진짜 그 종인지 아닌지’ 감별해야 한다. 따라서 산이나 자연에서 직접 본초를 채집해서 표본을 만들고, DNA 성분을 추출해서 연구하고 보관한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를 분석하고 약물을 감정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의 질병 치료와 보건 증진의 목적으로 본초를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 세포 실험을 하기도 하며, 임상 약리작용까지 연구한다.
한약은 천연물이기 때문에 똑같은 종일지라도 산지가 다르면 성분이 달라질 수가 있다. 따라서 한약을 표준화하는 일도 본초학의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다. 이처럼 넓은 의미에서 본초학은 기초한의학의 뿌리가 된다.

 

 

 

 

  본초학 전문가가 말하는 직업 이야기  

 

“인간을 숨 쉬게 하는
천연물의 가치를 알립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김호철 교수

 

 

경희대학교 융합한의과학연구소장, 대한본초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호철 교수는 2003년 천연물 연구개발 전문 벤처기업 ‘뉴메드’를 설립하고 진짜 표준이 되는, 효과 있는 본초를 연구해오고 있다. 본초와 ‘한 몸’이 되어 본초학 및 기초한의학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김호철 교수를 만났다.

 

 

 

30여 년 동안 본초학이라는 ‘한 우물’을 파셨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본초 연구를 시작하셨나요?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자연친화적이었어요. 대학교에서 한의학을 배우면서 막연하게 ‘연구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른 한의사들처럼 환자를 치료하거나 병원에서 임상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 당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한약을 달이지 않고도 알약으로 먹는다면 얼마나 편하겠느냐”라고요. 본초학 연구는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분야예요. 물론 실험하느라 밤을 새운 적이 많았지만 새로운 것을 밝히는 재미가 있는 직업입니다.(웃음)

 

 

본초학의 연구 분야가 광범위한 만큼, 일상생활에서 본초의 쓰임새도 다양할 것 같아요.
맞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한의원에 가면 한의사가 처방을 내려주는 ‘약재’로 가장 많이 쓰고요. 본초 연구를 통해 천연물 신약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먹는 약뿐만 아니라 주사제까지도 넓게 쓰인답니다. 이러한 ‘한약제제(한약을 병증에 맞도록 한방 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 말고도 많은 분야에서 본초를 활용합니다. 쉬운 예로, 우리가 자주 접하는 건강기능식품과 한방화장품에도 본초 원료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교수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연구 성과가 궁금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요?
제가 자문을 맡고 있던 ‘ㅇ’ 그룹에서 1996년도에 마케팅 담당자가 자문을 위해 찾아왔어요. ‘ㅅ’라는 한방화장품 브랜드의 제품 개선을 위해 약재를 하나 소개해달라고요. 하지만 한의약은 원리와 철학에 따라 신중히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그 담당자는 반년 동안 제게 과외 아닌 과외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죠.(웃음) 4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좋은 한방화장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제가 연구한 ‘자음단’이라는 성분으로 피부에 영양을 주고 자생력을 높이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어요.

 

 

‘K-뷰티’를 선도하고 있는 한방화장품의 탄생에 본초가 일조했다니, 신기하네요.(웃음) 그렇다면 ‘K-본초학’이 말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일까요?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결국 ‘인류의 행복’이에요. 사람은 천연물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해요. 밥도 한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죠. 천연물은 인류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삶을 윤활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천연물을 섭취했을 때 효능을 기대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렸을 때 도라지를 먹었는데 기침이 멎었는지 확인하면서 ‘이것이 진짜 효과가 있을까?’, ‘내 몸에 안전할까?’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본초학은 그러한 원초적인 질문을 해결해주는 학문이에요.

 

 

우리 몸의 건강과 직결되는 일을 하는 본초학 전문가는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 어울릴까요?
무엇보다 ‘연구자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서 무언가를 만지작하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좋겠네요. 본초학 전문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당연히 천연물이나 약초에 대해 관심이 많아야겠죠? 평상시에 약초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든지, 자연에 피어 있는 꽃 이름을 알려고 한다든지와 같은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야 관심 분야를 넓혀가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또, 본초학 전문가는 사람의 질병 치료를 도와야 하기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 정신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현재 ‘본초표본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계신데, 최근 발전기금 기부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본초학 분야를 널리 알리고 계신 교수님의 다음 계획이 궁금합니다.
경희대학교 호산본초표본박물관은 말 그대로 본초의 표본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박물관인데요, 이곳에서는 <동의보감>을 비롯한 전통한의학 문헌에 기록된 한약들의 정확한 기원을 밝혀 소재를 확보하고, 기원종을 수집합니다. 아직 진행 단계에 있지만, 약 1000종의 본초 표본이 전시관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한의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본초가 있고요, 특히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종 약재는 신경 써서 더 많이 확보할 거예요. 또한, 이러한 표본들을 단순히 눈으로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 가능한 형태로 그 자리에서 분양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본초의 산업화에 힘쓰고, 나아가 한약재를 표준화·규격화하는 데에도 앞장서고 싶어요. 지금은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해서 도슨트와 함께하는 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해볼 생각도 있답니다. 이듬해 봄에 문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독자 여러분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본초 공부를 위해 꼭 방문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11월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들을 위한 안성맞춤 ‘본초 테라피’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웃음)
먼저, 가시오가피! 두뇌 회전을 빠르게 해줍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인삼, 집중력을 높여주는 황기도 좋아요. 또, 지친 수험생활로 인한 피로 해소를 도와주는 오미자도 추천합니다.

 

 

글 이은주 ●사진 손홍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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