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이름을 달다 - 간판제작자
우리는 길을 걷다 무수히 많은 간판을 마주친다. 저마다의 이름을 빛내며 가게를 밝히는, 간판은 거리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에 늘 존재하는 간판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청춘간판’ 이수한 대표를 만나 간판제작자의 삶에 대해 물어봤다.
간판이 있는 곳이라면 방방곡곡 어디라도
Q 어떤 계기로 간판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A 전에는 컴퓨터 관련 회사에서 8년 넘게 영업직에 종사했어요. 그러다 회사가 한순간에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친구의 제안으로 간판 만드는 일을 시작했죠. 한 3개월 정도 일을 배우고 나니 ‘직접 회사를 차려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연세가 있고 경력이 많은 분들이 주로 간판업을 하다 보니 간판에도 오래된 감성이 묻어나는 측면이 있었는데요, 요즘은 청년 창업가가 많아져서 간판을 다는 소비자층의 연령이 많이 낮아졌어요. 그래서 그런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보다 젊은 느낌의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간판을 제작하는 회사를 세우게 됐습니다. 벌써 5년 차가 됐네요.
Q 젊은 감성! 그래서 ‘청춘간판’인가 봅니다.(웃음) 그렇다면 간판에도 트렌드가 있나요?
A 그럼요. 간판의 폰트와 소재가 주로 흐름을 타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한 2~3년 전에는 일명 ‘배달의 민족’ 폰트가 유행했지만, 요즘은 또 다른 스타일이 인기를 끕니다. 아무래도 폰트는 간판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몇 년 전부터는 ‘레트로 감성’이 유행하면서 간판에 옛 느낌을 돋보일 수 있는 갈바륨, 알루미늄, 스카시, LED 채널 등의 소재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Q 간판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되나요?
A 먼저 간판 제작 문의가 들어오면, 현장을 방문해서 고객이 원하는 간판 스타일과 느낌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간판의 길이를 측정한 이후에 디자인을 시작해요. 고객의 요구에 맞게 여러 번 디자인 수정과 조율을 거치면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갑니다. 간판 프레임을 짜고, 글자와 그림을 조합하고 조명을 다는 거죠. 완성된 간판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시공팀이 외부에서 간판을 설치하면 끝이 납니다. 모든 과정이 중요하지만, 간판의 길이와 수치를 잴 때 가장 주의를 기울여요. 단1cm만 어긋나도 그 간판을 설치하지 못하고 다시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죠. 마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일이 계속 어긋나는 것처럼요.(웃음)
Q 이런 애로사항이 있을지는 몰랐어요. 지금껏 수많은 간판을 달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A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갔던 현장이 떠오르네요. 간판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길이를 세밀하게 측정하지못한 적이 있었어요. 게다가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 거리의 특성상 낮에 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가는 바람에 애를 먹었죠.(웃음) 새벽에 일을 하며 3일간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납니다. 업무의 특성상 서울, 경기, 인천 어디든 출장을 가는데요,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간판도 색상과 폰트, 소재가 다르며 같은 동네에서도 건물마다 특징이 있어요. 간판업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까지는 대략 1년에서 2년 사이의 경력이 필요한데, 그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어요.
간 판 없 는 가 게 는 없 다
Q 옛 간판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 서울시에서는 매년 ‘좋은간판 공모전’을 열어 수상
작을 전시하더라고요.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간판’은 무엇인가요?
A 옥외광고법을 준수하면서, 도시의 미관을 해치지 않는 간판이요. 사실 과거에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간판들이 알게 모르게 많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를 개선하고자 건물 자체에 대한 간판 설치 가이드라인이 있기도 해요.
규정에 어긋나지 않고, 균일한 타입의 간판들이 걸려 있으면 거리가 훨씬 깔끔해질 거예요.
Q 간판제작자라는 직업만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면 뭘까요?
A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게를 알리는 수단이 바로 간판이잖아요. 요새는 간판의 개성을 살려서 가게 내부 인테리어를 포함한 콘셉트를 상징적으로 광고하기도 하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간판 없이 운영되는 가게는 없거든요. 가게마다 간판은 다 달려 있고, 새로운 가게가 생기면 간판을 꼭 갈아야 해요. 꾸준한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는 거죠.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훗날 ‘좋은 간판’을 만들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만약 간판회사를 창업하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광고업 사업자등록증’이라는 것을 발급받아야 해요. 또, 간판제작자가 되는 데 필요한 전공이나 자격증은 없지만 ‘보는 눈’을 위해 디자인 감각을 기르면 좋아요. 일러스트나 포토샵, CAD를 다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해보는 게 제일 중요해요. 컴퓨터를 만지고, 건물 관리 일도 해보고, 전기·전자도 공부해봤던 제 경험상 살면서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없었어요.(웃음) ‘한 우물만 파라’는 말보다는 사소한 일이라도 배우고 익히면서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간판,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
디자인
고객 상담을 통해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한 시안을 만든다.
수정과 보완 피드백을 반영해 세밀하게 조율해야 한다.
제작
사이즈에 맞춰 간판을 재단하고 조립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어떤 자재를 쓰느냐에 따라 연출되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플렉스 간판, LED채널 간판 등 소재에 따른 조립 방식이 다양하지!
시공
스카이 크레인 장비를 사용해 사람이 직접 가게의 간판을 다는
작업이다. 시공 작업은 보통 하루 정도 걸린다.
완성
데크 목재를 현장에서 하나하나 맞춰 제작하고, 글자를 올린 ‘방부목 간판’이 완성됐다. 조명을 켜서 LED 채널에 불빛이 잘 들어오는지도 확인해본다.
글 이은주 ●사진 손홍주, 청춘간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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